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랭 프로스트 (문단 편집) == 애증의 라이벌 [[아일톤 세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f1fanatic.co.uk/senn_pros_adel_1988_mcla_470150.jpg|width=100%]]}}} || || [[맥라렌]] 시절 [[아일톤 세나]]와 함께. || 1984 모나코 GP의 우천 중단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악연은 1988년에 맥라렌이 로터스 소속이었던 아일톤 세나를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점화됐다. 프로스트와 세나는 F1 역사상 최강의 듀오로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도 둘은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철저한 분석과 전략을 선호하는 프로스트의 레이싱 스타일과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세나의 레이싱 스타일은 완전히 정반대였는데[* 세나가 화려한 주행으로 가장 많은 폴포지션과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랑프리 포인트는 차분하게 안정적인 주행을 했던 프로스트가 더 높았다.], 레이싱 스타일만큼 둘의 사이도 악연에 가까웠다. 보통은 뛰어난 1명을 메인 드라이버로 두고 그보다 떨어지는 드라이버가 세컨드 드라이버가 되어 메인 드라이버를 지원해주는 일이 많은데, 이 둘은 둘 다 메인을 맡아도 이상할 게 없는 기량을 가진데다 기량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했다. 서로간의 불화가 커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 맥라렌 후기엔 팀내에서 파벌이 갈려 서로 제대로 말도 섞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두 사람의 불화가 폭발해 대외적으로 드러난 경우가 바로 1989년 일본 그랑프리의 충돌 사고다. 앞서 달리던 프로스트의 인코스를 세나가 파고들었고 프로스트가 방어하며 충돌이 발생했다.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는 충돌인데, 세나를 옹호하는 측에선 드론뷰 시점의 영상을 증거로 프로스트의 코스 방어가 이질적으로 느렸다고 주장하고, 프로스트 측은 프로스트의 행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세나가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또 다른 유명한 논란을 낳았다. 그대로 레이스를 포기한 프로스트와 달리 세나는 다시 레이스를 재개해 극적으로 1위를 차지했지만 레이스 복귀 규정 미준수를 이유로 실격 처리됐다. 세나는 그로 인해 레이스에서 이득을 본 게 없으며 전례를 봐도 실격은 과한 처사라 어필했으나 기각됐다. (재밌는 건 나중에 세나의 레이스 복귀는 문제가 없는 쪽으로 규정이 변경된다.)] 프로스트가 페라리로 이적한 90년 일본 GP에서도 레이스 개시 직후 앞서 달리던 프로스트를 세나가 들이받아 양자가 리타이어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포인트에서 세나가 앞서있는 상황에서 프로스트에게도 역전의 가능성이 있었으나 레이스 시작과 동시에 벌어진 리타이어로 인해 세나의 우승이 확정됐다. 충돌의 고의성에 대한 질문에 세나는 계속 당하고만 있진 않겠다며 사실상 고의 충돌을 시인했다. 레이스 전부터 세나는 자신이 폴 포지션을 차지했음에도 노면 상태가 불리하게(프로스트에게 유리하게) 배정됐다며 대놓고 분노를 드러냈다.[* 세나는 기존부터 프로스트와 국제 자동차 연맹의 수장 발레스트르의 유착 관계를 의심하며 그로 인해 자신이 부당한 처사를 받아왔다는 불만을 표출해왔다.][* 안 그래도 위험한 드라이버로 낙인 찍혀 라이센스가 취소될뻔한 전적도 있었던 세나는 이 사건으로 인해 큰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후 1991년, 프로스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시즌 중 1승도 올리지 못하는 부진 끝에 페라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 굴욕을 겪었고[* 다른 드라이버도 아니고 프로스트 정도 되는 드라이버라면 드라이버의 기량보다도 차량의 성능 문제가 컸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결국 부진에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한 법이고, 팀과의 관계도 좋지 않고 팀의 차량을 대놓고 비난했던 프로스트가 해고된 것이다. (프로스트는 자신이 몰던 레이싱 머신의 핸들링 성능을 무려 '트럭'에 비유했다...)], 92년 TV 해설가로 데뷔하면서 은퇴 수순을 밟는 듯 했다. 하지만 1993년, 그는 윌리엄스 팀에 입단. 그 시즌에서 7승을 거두며 자신의 통산 네 번째 월드 챔피언에 오르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lain-Prost-1993.jpg|width=100%]]}}} || || [[윌리엄스 레이싱|윌리엄스]]에서 마지막 챔피언이 된 [[1993년]]의 모습. || 하지만 윌리엄스가 세나의 영입에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 돌자, 프로스트는 은퇴를 선언했다. 애초에 윌리엄스에 입단할 때 프로스트가 내세운 조건 중에 세나를 영입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세나를 영입할 거라면 차라리 이듬해 계약금까지 받고 은퇴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 정도로 둘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물러난 후엔 당시 윌리엄스 소속이던 세나와의 관계도 많이 누그러져서 평범하게 인사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이몰라에서 롤란드 라첸베르거가 사망했을 때 GDPA의 재결성을 논의하기 위한 세나가 가장 먼저 찾아간 드라이버가 프로스트였다. 또 세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하며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한 사람들 중 하나가 프로스트였다. [[http://oocoocoo.com/150120477640|알랭 프로스트에 대해 자세한 분석이 들어가 있는 내용]]이다. 주관이 비교적 많이 들어가있는 편이긴 하지만 읽을만한 내용이다. 아일톤 세나가 정말 대단한 드라이버인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스트가 결코 평가절하당할만한, 그리고 굳이 악역으로서 역할을 떠맡아야할 선수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세나보다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꽤 있으며, 은근히 확고하게 정립된 F1의 빅5[* [[후안 마누엘 판지오|판지오]], [[짐 클락|클락]], 프로스트, [[아일톤 세나|세나]], [[미하엘 슈마허|슈마허]]], 80년대 이후로 좁힌다면 빅3에도 거의 이견없이 들어가는 위대한 선수다. |'''팀메이트 세나와의 경쟁 (1988-1989)'''| {{{#FFFFFF '''세나'''}}} || {{{#FFFFFF '''vs'''}}} || {{{#FFFFFF '''프로스트'''}}} || || 17 || '''레이스 승리''' || 13 || || 28 || '''퀄리파잉 승리''' || 4 || || 14 || '''그랑프리 우승''' || 11 || || 26 || '''폴 포지션''' || 4 || || 154 || '''포인트''' || 186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